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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지난 주 조선의 위클리 비즈의 오바마 캠프의 소셜 미디어 전략의 진두 지휘자 에델만의 슬레비의 인터뷰를 일독 해주시길

http://biz.chosun.com/site/data/html_dir/2010/09/03/2010090301503.html

이 글을 읽으면서 정말 에드워드 버네이즈와 아이비 리 등으로 대표되던 옛날의 매스미디어가 중심이 되는 PR의 시대는 끝났다는 걸 새삼 느끼게 된다.

아마도 매스컴 대응과 작업이 없어지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가 되지 않을 것이고,  그 때처럼 나쁜 글을 내리고, 좋은 글을 올리는 방식의 홍보는 불가능 해진다.


소셜 미디어의 위력은 단순히 새로운 미디어, 기존의 매스 미디어의 대안 미디어의 등장을 뜻하는게니라, 뉴스를 소화하는 방식이 매체에서 개인으로 곧바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주변의 믿을 만한 사람이 해설해 주는 대로 뉴스를 소화하는 경향을 늘리는 것에서 그 위력을 발휘한다. 

왜냐면, 보다 많은 사람이 서로 이야기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바로 소셜 미디어의 특징이기에 사람들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같은 생각을 갖거나 마음이 맞는 사람과 소셜 미디어를 통해서 소통이 늘어나게 된다.

즉, 이제 뉴스를 개인이 소화하는 것이 아닌 '커뮤니티' 단위로 소화하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또 하나. 그러한  커뮤니티는 고정되어 있지도 않고, 샐 수 있을 수도 없고, 그것이 구성과 해체가 언제 어디에서 어떻게 일어나는지 파악도 못한다. 내가 트위터에서 글 하나 올린 것을 누군가 공감하여 RT를 한다면 바로 그 순간 그 RT한 팔로워와 나는 같은 의견을 공유하는 커뮤니티가 된다. 그리고 그 RT가 이어지면서 커뮤니티는 확대된다. 그러나, 그 RT가 끝나는 순간 그 커뮤니티는 해체되고 그 흔적만이 타임라인에 남게 된다. 내가 다른 글을 쓰더라도 같은 사람이 똑같이 RT를 하리라는 보장이 없기에 그 커뮤니티를 다시 구성할 수는 없다. 단지 그러한 RT가 이어지면서 나의 의견을 주의 깊게 보는 사람이 몇 명 늘어 날 수도 있다. 그것은 그럴 가능성이 높은 것일 뿐, 개량할 수는 없다.

그런 소셜 미디어 상의 경향적 커뮤니티가 여론을 이끌어 간다면, 어떻게 해야할 것인가?

그런 경향에서 승리하려면 고정적인 우군을 확대하는 전략 뿐이 대응책은 없다.
내가 스스로 소셜 미디어안에서 적극적인 소통을 통해서 나의 의견을 공감하는 사람을 찾아서 그 사람이 계속 공감하도록 유대관계를 강화하면서 우군을 늘려가는 것이 결국 가장 효과적이다. 시간이 오래 걸릴 것처럼 보이지만, 광속으로 퍼져가는 인터넷의 세상에서는 설득력있는 내용과 솔직하고 진실된 대화는 단 몇 시간 만에 수백만의 우군을 확보할 수 있다.

그리고 반대자들에게는 비판의 거리를 주지 않으며,그들과 직접 싸우지 말고 대신 우리의 우군들이 대신 증언하고 말하게 하라. 우리의 우군들이 힘을 얻고 나를 자랑할수 있도록 하는 것이 소셜 미디어가 지배하는 새로운 세상에서 승리라는 법이다


Posted by SilverStone passionior

스눕상대를꿰뚫어보는힘
카테고리 인문 > 심리학 > 교양심리
지은이 샘 고슬링 (한국경제신문사, 20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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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내가 누군가와 친해지거나, 아니면 보다 깊은 관계를 만들고 싶을 때 하는 구라(?) 심리테스트가 있다. 사실 구라라고 하기엔 수백명의 임상실험을 통해서 어느정도 정리가 된 심리테스트라서 개인적으로는 상당한 믿음을 가지고 있지만, 어디에서 공인된 것이 아니라 여전히 앞에 구라라는 말을 붙일 수 밖에 없긴 하다. 그게 아쉬워서 제대로된 도형 심리분석을 배우고 있다.

이 책은 그것과 비슷하게 그 사람이 쓰는 물건, 거주 환경, 작업 환경을 보고 그 사람에 대해서 미루어 짐작하는 것에 대해서 말한다.

사람이 쓰는 방과 책상은 그 사람에 대해서 많은 것을 이야기 한다고 말하는 저자는 다양한 실례와 분석 틀을 가지고 설명한다. 

이 책은 다른 누군가를 더 알고 싶은 사람의 욕구에 적절히 부응하는 책이다. 게다가 그 사람을 직접 보지 않고 알 수 있다니 얼마나 매력적인가?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러한 심리학적 도구는 사람에 대한 사랑이 바로 기반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도구는 양날의 검처럼 누가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서 사기에서 심리 치로까지 다양하게 활용 될 수 있으니까...

이 책을 읽으며 그런 구라 심리테스트를 하는 것에 대한 책임감이 느껴졌다.

새로운 기술을 배우려다가 근본적인 철학과 태도에 대한 고민이 시작된다. 

그래도 그 심리테스트는 포기하지 않을 생각이다. 그게 사실이던 아니던 누군가와 말을 트고 이야기를 깊게 할 수 있다는 것은 사실이니까.

이 책의 스눕도 그렇게 이용되길...

Posted by SilverStone passionior

살아온기적살아갈기적장영희에세이
카테고리 시/에세이 > 나라별 에세이 > 한국에세이
지은이 장영희 (샘터사, 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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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이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었던 건, 저자인 장영희 교수님이 세상을 뜨셨던 것과 맞물려서였다는 판단을 난 지금도 하고 있다. 장애인 영문학 여 교수의 유작 수필, 제목도 삶을 이야기 하고 있는....

그래서 마음 한 구석으로는 보고 싶었지만, 막상 책을 지르기엔 살짝 아까운 생각이 들었다. 베스트셀러 돈주고 사서 보긴 아깝다는 약간 이상한 생각을 가지고 있어서 말이다.

드디어 공짜고 읽을 기회가 주어졌고, 나는 이 책을 아주 가볍게 읽었다.
그리고 결코 가볍지 않은 뒷맛을 던져 주었다.

같은 말을 해도 '누가' 하는가에 따라 달라지고, 그리고 '어떻게' 하는가에 따라 그 의미와 여운은 정말 완전히 달라 진다.


장영희 교수는 매우 솔직하다. 지독한 길치에 시간관념 없는 몸이 불편한 여자 교수라는 본인의 핸디캡을 아주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그리고 그 속에서 만나는 일상과 그리고 상념을 거칠것이 없이 그대도 투박하리만치 보여준다.

그럼에도 이 책은 아름답다. 분청사기 그릇의 형태와 질감처럼 질박하고 솔직한 모습이랄까...

유려한 필체와 눈에 띄이는 참신하고 놀라운 삶의 지혜나 경구는 없지만, 그래서 더 소중한 이야기이다. 왜냐면 그 글을 쓰기 위해서 장영희 교수가 치루어야할 댓가와 고민은 너무나 깊으며, 그렇게 나온 질박하고 소박한 일상적인 읊조림은 장 교수의 삶의 무게가 더해져서 예상치 못한 울림을 만들어 낸다.

이 책을 보면서 울어제낄 사람은 없다. 하지만, 그냥 수많은 수필집의 하나로 치부할 사람도 없다고 생각한다.

좋다...
Posted by SilverStone passioni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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